미류나무를 생각하다

공상쟁이 2009. 3. 31. 03:53 posted by 향기로운바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릴 적 취학기에 가까워 면내의 부모님과 함께 살게되기 전까지 할머님과 단 둘이 살았습니다. 그 시골집에는 커다란 미류나무가 한 켠에 몇그루 나란히 있는 너른 마당이 있습니다. 밤이면 작은 호롱불을 켜시고 반짓고리를 꺼내시어 어두운 눈으로 바느질도 하시고 잠들기 전에 옛날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어머님의 말씀으론 때맞춰 젖만 주면 전혀 울지 않을 만큼 조용한 아이였다는 저는 연세 많으신 할머님의 조용한 벗이기에 적합했나 봅니다.

아주 어릴적의 기억은 간혹 꿈에서 보기는 하지만 뚜렷한 영상이 아니고 정확하지도 않아 알 수가 없습니다만, 평소에도 가끔 집중을 하면 어릴 적 기억이 나곤 합니다. 큰 방앞에는 마루가 있습니다. 여름날 마루에서 놀다 굴러 떨어진 기억도 있습니다. 그 마루가 조그맣던 제게는 꾀나 높았었나 봅니다. 마루 앞에 툇돌이 있지만 그 것을 딛고도 올라서지 못해 낑낑거리다 부엌쪽의 마루옆에 놓인 무언가를 밟고 올라 갑니다. 그 마루에서 두툼한 가위로 손톱을 깍아 주실때면 어찌나 아팠던지요.

마늘쫑이라고 하나요... 마늘의 굵은 줄기를 절인 음식이나, 신김치를 지금도 좋아합니다. 미각에 관해서 어릴적의 기억이 평생 그리워하는 입맛이 된다고 하더군요. 보통 그 때가 10살 즈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어린 제게 마늘쫑이 짜다고 쪽 빨아 짠맛을 없애고 주곤 하셨습니다. 시고 매운 몇해 전 담근 김장 김치도 길게 찢어 물에 헹궈서 주시곤 하셨습니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습니다만, 이 아이도 어쩐지 어린 시절의 입맛이 평생 가나 보다 싶습니다. 처음에 데리고 올 때는 한손 안에서 반도 안되는 작은 크기였지만 어느새 30센티가 넘게 자랐습니다. 워낙 장이 안 좋았던 터라 요즘도 잘못 먹이면 설사를 하곤 해서 그런 것은 피하게 되네요. 유치가 나고 빠질 무렵 더운날 밖으로 데리고 나갈때면 차가운 캔커피를 마실 때 더워하는 모습에 손바닥에 조금 부어 먹엿더니 그 맛을 기억해 버렸나 봅니다. 요즘도 가끔 캔커피 따는 소리가 들리면 발닥 일어나 빤히 쳐다봅니다. 안 좋은 것을 먹이는 것은 아닌지 싶어도, 예전 프랑스의 어느 왕이 커피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시험하기 위해 한 사형수에게는 매일 커피를 주고, 다른 사형수에게는 차를 매일 주었답니다. 그런데, 두 사형수보다 그 프랑스 왕이 먼저 죽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머 큰 문제있겠어? 라고 스스로 세뇌를 합니다. 그렇듯이 제게 각인된 입맛이라는 것도 그러한가 봅니다. 간혹 요리를 다루는 만화같은 것에서 다루는 고향의 맛이라거나 어머니의 맛이라고 하는 그런 것이겠죠. 제게는 그 것이 할머니의 맛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 할머니랑 살던 시골의 마당 한켠엔 높디 높게 구름에 닿을 듯이 길게 자란 미류나무들이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지내던 때에는 멀리 나가 본 기억이 없군요. 넓은 마당과 미류나무와 외양간, 마당 한켠의 작은 밭, 집 입구 양쪽에 커다란 감나무 그리고 미류나무. 한살 많은 여자아이와 소꼽놀이를 하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 시골엔 또래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만 어쩐지 그 또래들과 놀았던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나중에사 무덤가에서 공차고 놀던 기억이라든지, 개구리 잡아 뒷다리 구워 먹던 기억과 같은 것이 있긴 합니다. 연못에서 물밤이라는 것을 건져 먹던 기억도 있구요. 방개라는 것을 잡아 구워 먹은 기억이며, 참새를 참아 구워 먹던 기억...

찔레꽃도 좋아합니다. 나중의 일이지만, 소꼽놀이의 기억의 주인공인 그 녀와 먼 시골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슬픈 일을 겪은지 얼마되지 않아 하교를 하는 길에 함께 가 달라했습니다. 그 당시엔 포장되지 않은 10 리길을 찔레꽃이 필 무렵 함께 걸어 갔습니다.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갔던 기억입니다만 기억에 오롯이 남은 것이라곤 찔레꽃 향기가 길가에 한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얼마 있으면 찔레꽃 향기를 맡을 수 있겠습니다. 아... 장사익 선생님의 찔레꽃이라는 음악도 듣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