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경영과 측근 경영

경영/철학 2008. 1. 18. 11:12 posted by 향기로운바람

출처: 공병호경영연구소


분신은 CEO와 철학·목표를 공유한다

측근은 CEO의 심기와 얼굴을 관찰한다


잘되는 회사의 경영자들은 회사 안에 자신의 분신이 있다. 이들은 리더와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리더와 나란히 서서 같은 목표를 본다. 분신들은 그래서 회사의 또다른 리더들이다. 이런 분신들이 많으면 회사는 최고경영자가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잘 굴러간다.

리더와 닮은 지도자, 즉 분신을 키우는 과정은 기본 자질을 가진 사람을 뽑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능력 있는 사람을 선택한 뒤에 리더와 같은 생각을 갖도록 훈련시켜,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리더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분신은 성과로서 평가받고, 같은 철학으로 동질감을 형성한다.

13세기 전반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몽골제국의 정복은 분신의 힘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예다. 전 세계를 지배한 몽골제국은 각지에 도시를 건설하고 교통망을 정비해 교역을 촉진시켰고, 화폐 단위도 통일했다. 소위 세계화의 시초다.

이러한 대성공 뒤에는 칭기즈칸이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지만 아무리 칭기즈칸이라도 그 광대한 제국을 혼자 통치할 수는 없었다. 그가 대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자신과 닮은 지도자를 키워서 사방으로 보냈던 것이라고 한다. 몽골제국 곳곳에는 제2, 제3의 칭기즈칸이 있었던 것이다.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이 순식간에 이랜드를 키워낸 비결 중 하나로 칭기즈칸식 지도자 양성방식을 꼽는다. 박사장은 지도자감을 선정한 뒤, 소위 정신을 동일하게 하는 과정에서 성경공부 방법인 QT(Quiet Time:경건의 시간)를 활용했다. 이런 방식으로 키워낸 분신들이 회사가 급성장하는 데 필요한 핵심인력들로 성장했다.

분신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부류가 바로 측근이다. 측근은 말 그대로 주위를 맴돌 뿐 정신을 나누지 않는다. 이들은 리더의 철학이나 목표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관심사에 관심을 가진다. 이들은 리더와 나란히 서서 같은 목표를 향하는 대신 리더와 마주서 리더의 심기와 얼굴을 살핀다. 측근은 리더의 기분이나 취향을 읽는 데는 빠르지만 리더의 목표나 가치관에는 무심하다.

한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오너 유고 시 쉽게 몰락의 길로 가는 것은 바로 분신은 없고 측근만 있다는 증거다. 1997년에 법정관리로 들어간 기아자동차도 측근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다. ‘봉고신화’를 통해 회장자리에 오른 김선홍씨는 ‘한국의 아이아코카’ 운운하면서 사실상 오너의 지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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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임원진을 측근들로 채우고, 소위 나눠먹기식 경영으로 노조를 포함한 회사 내 이해관계자들을 회유했다. 이러한 내부적 경영 실패로 부도가 발생했으나 측근들로만 채워진 임원진은 직언 대신 ‘특정 재벌기업의 음모론’을 되뇌면서 결국 파멸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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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통일할 정도의 역량을 가졌던 진시황도 말년에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측근 중심으로 정사를 돌본 결과, 분신으로 여겨졌던 태자와 몽염장군이 오히려 벼룩 같은 측근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왕조까지 멸망하는 비운을 맞았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볼 때, 회사나 조직의 규모에 상관없이 최종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는 10명 선을 크게 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경영위원회건, 사장단회의건, 집행위원회건 의사결정기구가 경영자의 감정과 신변에만 신경을 쓰는 무능한 측근들로 채워져 있을 경우 회사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은 분신인가, 측근인가?

<이코노미스트> 2003. 12. 23 717호에 실린 '경영코칭'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