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힘

마음다루기 2009. 11. 25. 13:20 posted by 향기로운바람

Psybernetics ( 사이버네틱스에 대하여 )

야구 경기를 보면서 외야수가 날아가는 공을 재빠르게 포착하여 받아 내는 모습보다 더 멋진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볼 때마다 우리를 감탄케 한다. 공이 어디쯤에 가서 떨어질 것인지, 또는 어디쯤에서 공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인지 하는 따위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공의 속도, 공이 떨어지면서 그리는 각도, 공의 방향, 편차, 초(初)속도와 종(終)의 차이 등을 참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머뭇거리고 있을 사이가 없다. 이런 것들을 재빨리 계산하여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달려나가야 한다. 그 다음 순간에는 자신이 얼마만큼 빨리 달려야 하는지, 그리고 공을 받아 낼 수 있는 지점에서 공과 동시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어느 방향을 택해서 뛰어야 하는 따위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외야수는 이런 것들에 관하여 의식조차 않는다. 그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목표 진입적 메카니즘이 그의 눈과 귀를 통해서 입력된 자료를 가지고 그러한 모든 것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의 두뇌 속의 계산기가 기억된 자료(날아가는 공을 받아 내려 했던 때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경험)와 비교해 가면서 이 정보를 취한다. 모든 필요한 계산이 눈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지고, 다음순간 그의 다리 근육에 명령이 하달된다. 그러면 그는 단지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자아개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형외과 의사 멕스웰 말츠는 선천적인 기형이라든가 혹은 전쟁터에서 혹은 불의의 사고로 상처를 입어 제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된 무수한 사람들을 수술하여 그 모습을 되돌려 주는 가운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겉모습이 바뀌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인격(personality)이 나타난다는 사실이었다. 겉모양이 변하면 거의 언제나 사람 그 자체도 따라서 바뀌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인격과 행동체계가 함께 변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재능, 능력까지도 변화가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그러한 변화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직접적인 이유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그가 찾아낸 이유는 '자아개념(self-image)' 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제 나름대로 정신적 청사진이나 자기의 정신적 모습을 가지고 있다. 아마 이것은 의식하기에는 너무 희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며 마지막 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자아개념은 곧 '내가 어떠한 부류의 인간' 인가하는 것에 대한 자기 자신의 개념이다.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대로 행동하고, 느끼고, 실천한다. 이것은 우리의 본질적인 성향이다. 자아개념은 사람의 인격은 물론이거니와 능력의 한계까지도 결정짓는 것으로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아개념은 어떻게 생성되는가?

이러한 자아개념은 대부분이 우리의 과거의 경험, 성공과 패배, 굴욕감과 승리, 그리고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 특히 어린 시절에 우리가 접한 사람들의 태도에 의하여 무의식적으로 생성된다. 이러한 모든 것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아를 마음속에서 조립한다. 자기 자신에 관하여 일단 어떠한 관념이나 믿음이 자아 개념으로 박혀 버리면 이것은 '현실' 로 나타난다. 그러면 아무리 의식적인 노력을 쏟고 자기의 의지력을 총동원하더라도 그와 달리 행동할 수 없다.

습관이나 인격, 또는 살아가는 방법 따위를 바꾸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이유는 지금까지 그러한 모든 노력을 내면적 사고방식을 고치는 데에 쏟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겉으로 드러난 행동 그 자체를 고치는 데만 쏟아 왔기 때문이다. 굳게 믿고 있는 개념을 바꾸거나 나쁜 습관을 고치고차 할 때 노력이나 의지력을 동원해 봤자 오히려 역효과만 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의식적인 노력만을 했기 때문이다. '의지' 와 '자아개념' 이 상충되었을 경우에는 언제나 자아개념이 이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자아개념은 정신적 영상효과에 의하여 쉽게 변화될 수 있다. 왜나하면 인간의 정신적 도구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라고 하는 '목표진입적 메카니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Cybernetics ( 목표진입적 메카니즘 )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는 기계의 목표진입적 제어장치의 메카니즘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목표진입적 메카니즘의 예로 요격 미사일 따위를 들 수 있다. 요격 미사일은 자기가 맞추어야 할 목표물을 알고 있으며, 단지 그것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물이 있는 대강의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추진기관과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줄 감각기관(레이다, 음파 탐지기, 열 추적장치 따위)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감각기관은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을 때에는 옳게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긍정적 진단), 방향을 잘못 잡아 올바른 진로에서 벗어나 있을 때는 그것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부정적 진단). 그것은 긍정적 진단에는 반응하거나 응답하지 않는다. 이리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으므로 그것을 그대로 계속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적 진단이 내려지면 교정장치에 의하여 자동 조정되며, 조정된 방향이 과도하게 틀릴 경우에는 부정적 진단을 통하여 다시 방향이 조정된다. 이것은 그야말로 갈짓자 걸음의 연속이며 글자 그대로 목표물을 향하여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형국이다.

Psycho Cybernetics

사람의 행동양식 또한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할 때는 목표진입적 메카니즘 제어장치와 흡사한 기능을 가진다. 이제 막 근육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집기 위해서 손을 뻗치는 모습을 보면 손의 동작을 교정해 나가는 모양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어린아이에게는 끌어내서 쓸 만한 '기억된 정보' 가 거의 없다. 그리하여 그 조그만 손을 목표물에 도달하기까지 누가 보아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양 옆으로 왔다갔다 갈짓자 모양을 그리면서 더듬더듬 동작을 계속한다.

장난감을 집어 올리는 목표를 달성해 낼 수 있는 것도 이 목표진입 메카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전뇌(前腦)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전뇌가 하는 일은 다만 목표를 설정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고 싶다는 욕구를 일으켜 행동으로 ?기게 하면서 손이 계속적인 진로 수정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자동적 메카니즘에다 그 정보를 제공하기만 하면 된다. 목표를 선택하여 행동을 개시하면 그때부터는 자동적 메카니즘이 이것을 떠맡아서 알아서 처리한다.

자동메카니즘은 의식이 없다

다람쥐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나무 열매를 어떻게 주워 모으는지를 안다. 또한 겨울을 나기 위하여 그것들을 저장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않고도 안다. 새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금자리를 짓는지 가르칠 필요가 없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날 때가 되면 수천 킬로미터도 거뜬히 날아가며 한번도 독수리를 보지 못한 새끼라도 하늘에 독수리가 날고 있으면 안전한 곳으로 피한다.

어떤 사람이 인적이 드문 황야의 오솔길에서 회색곰과 맞닥뜨렸다고 가정하자. 그는 그 곰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달아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기 위하여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한 겁을 내야겠다고 의식할 필요도 없다. 두려움의 반응은 자동적으로 취해지며 그것은 인체의 각 기관을 자극하여 근육에 추진력을 가함으로써 그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빠르기로 달리게 한다. 그의 심장의 고동은 빨라지고 강력한 근육 촉진제인 아드레날린이 혈류로 쏟아져 들어간다. 달리는데 필요치 않은 모든 신체 기능은 일시에 중지된다. 모든 소화기능이 중단되고 피는 모조리 근육으로 보내진다. 숨결을 가빠지고 근육에 공급하는 산소량은 수배로 증가된다.

이렇듯 생명은 문제와 도전에 자동적으로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동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기계처럼 작동되며 자기 자신의 의지 따위는 없다. 그것은 언제나 환경이나 주위의 상황에 대한 우리 자신의 현재의 소신이나 판단에 맞추어 적합하게 반응한다. 그것은 언제나 적절한 감정을 찾아내어 우리에게 주고자 하며, 우리가 의식 속에서 결정한 목표를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자동적 메카니즘은 전혀 인격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의식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엔그림(기억)

목표진입적 메커니즘이 정교하게 작동하기 위하여는 과거의 경험을 비교 분석할 필요가 있다. 어린아이는 장난감을 집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성공했던 기억과 실패했던 기억을 비교분석하면서 그 행위는 더욱 정교해진다. 자동적 메카니즘은 그 후에 다시 이와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그러한 반응을 그대로 활용한다. 그리고는 더 이상 의식적으로 생각하거나 하지 않고 다만 그 행동을 되풀이 할 뿐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경험할 때는 이와 관련된 신경세포들이 뇌조직에서 마치 일정한 행태로 문신을 해 넣은 것같이 서로 연결 상태를 이룬다. 이러한 연결상태가 이루는 무늬는 앞으로? 사용을 위해서 뇌조직에 기록되어 우리가 과거의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다시 사용되거나 재현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연결 무늬를 엔그림(인상)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인간의 두뇌는 사람이 경험하고 관찰하고 배워 온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환자는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 뇌수술을 하다가 우연히 수술기구로 그 작은 일부분을 건드리게 되었을 때 환자의 의식 속에서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렸을 때의 어떤 일을 그대로 체험했다고 한다. 피질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기만 하면 환자는 단순히 옛날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다시 체험한다.

고착된 엔그림은 없다

우리의 두뇌에는 과거의 경험과 느낌을 저장해 놓은 정신적 창고가 있다. 이곳에는 성공에 관한 것도 있고, 실패에 관한 것도 있다. 녹음이 되어 있는 테이프처럼 이러한 경험과 느낌은 우리 뇌속의 회백질에 있는 신경 엔그림 위에 기록된다. 하지만 인간 두뇌속의 엔그램은 재생할 때마다 약간씩 변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것들을 대하는 우리의 현재의 기분과 생각과 태도가 취하는 질과 바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신경세포가 최초로 어떤 엔그램에 관여하고 다시 다른 엔그램에 관계할 때는 그 다음 엔그램의 성격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 신경세포와 관계된 최초의 엔그램은 약간의 변화를 갖게 된다. 그리고 어떤 엔그램이든간에 그것을 상기하거나 되새길수록 더욱 뚜렷해지고 강력해진다. 신경세포의 연결이 효율적이고 쉬울수록 엔그램이 더 오래 지속되며 사용하면 할수록 그 효용성은 높아진다. 바꾸어 말하면 사용하지 않을 때는 효용성이 낮아진다.

프로이드를 필두로 한 대다수의 정신분석학자들은 어린 시절의 비극적이고 불행한 경험이나 마음속에 깊이박힌 상처같은 것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에 피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사실이 현재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또한 현재도 틀림없이 과거의 기억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간과했다고 볼 수있다. 우리가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그리하여 우리의 엔그램에 흉칙한 상처가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그러한 엔그램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거나 혹은 또 그로 인해 자아가 이미 고착되고 결정지어져 변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목표제시

목표진입적 메카니즘은 언제나 목표를 향해서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는 그 메카니즘에다 뚜렷한 목표만 제시하면 된다. 그러면 목표진입적 매카니즘이 정확하게 우리를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것은 능률적인 면에서 의식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최종적 결과를 상상함으로써 목표를 제시할 수 있으며, 그러면 메카니즘이 그것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제공한다. 목표달성을 위하여 정교한 다리 근육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면 자동적 메카니즘이 그것을 제공할 것이고, 어떤 새로운 착상이 필요하다면 자동적 메카니즘이 그것을 제공할 것이다.

목표진입 메카니즘을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최종결과를 상상하여야 한다. 뇌와 신경계에 '진짜' 라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을 만큼 우리 눈에 생생하게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 메카니즘이 이용하는 정보는 자신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에만 국한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표나 최종적 결과를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자기의 목표를 뚜렷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그려보라, 그리고 그 이상적인 목표가 이루어졌을 때 맞볼 수 있는 느낌을 포착하라, 그리면 자연스럽고 창의적인 행동, 잠재의식적인 정신력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영상효과(이미지 트레이닝)

정신적 영상은 새로운 인격을 제공한다. 인간의 신경조직은 사실상의 경험과 생생한 상상 속의 경험을 구분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영상연습을 통하여 농구공을 바스켓에 집어넣는 기술을 향상시킨 실험을 하였다. 먼저 피험자를 세 무리로 나누어 첫 번째 무리는 매일 20분씩 20일간 연습시켰다. 그리고는 첫째 날과 마지막 날의 득점만 기록해 두었다. 두 번째 무리는 전혀 연습시키지 않은 채 첫째 날과 마지막 날에만 공을 던지게 하여 득점를 기록했다. 세 번째 무리는 연습을 하되 실제로 하지 않고 단지 상상만으로 20분간 던지게 하여 역시 첫째 날과 마지막 날의 득점을 기록했다. 실험의 결과, 첫 번째 무리는 24퍼센트의 향상을 보였고 두 번째는 전과 똑같은 결과를 보였다. 그런데 상상만으로 연습시킨 세 번째 무리의 향상율은 자그마치 23퍼센트였다.

타임지는 벤호겐이 골프대회가 있을 때마다 실제로 공을 치기 전에 타구 하나하나마다 예행 연습을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타구봉의 꼭지가 정확하게 공을 때리고 그의 팔은 완벽한 움직임으로 다음 동작을 수행해 낸다. 이러한 모든 것을 그는 생생하게 느낌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상상했던 대로의 완벽한 타구를 해내기 위해서 '근육의 기억' 에 온통 매달린다.

이러한 방법의 핵심은 바로 '어떤 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것을 정확하게 하는 데 대한 뚜렷한 정신적 영상이 필요 불가결한 것'이라는 것이다.

부정적 영상의 처리

심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합리적, 논리적, 의식적 사고가 무의식 흐름, 곧 사고, 감정, 행위 따위를 결정하는 심리 과정(메카니즘)에 어떠한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부정적인 믿음이나 느낌 또는 행위를 고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의식 깊숙이 박혀 있는 그 모든 과거의 기억들을 들추어내어 훑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무의식 속에서 깊숙히 도사리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을 파헤쳐 드러내어서 재검토해야만 반드시 좋은 인격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잠자는 사자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인 경우도 있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기억으로 하여 희생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식과 사고력에 의해서 그런 것이지 무의식에 의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것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도, 우리가 전념해야 할 목적 영상을 선택하는 것도 전부 우리의 의식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기술이라도 그것을 제대로 익히려면 언제나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제대로 목표물을 맞힌다든가 성공적인 시도가 성취되는 것이며, 그러는 가운데 하나의 기술을 완전하게 익힐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이 성공적인 반응 양식을 기억하거나 되살려서 앞으로의 시도에 그대로 본떠서 하면 된다. 목표진입 메카니즘의 특징은 과거의 잘못이나 실패, 그리고 고통스럽고 불행한 경험들을 죄다 기억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 경험들이 배움의 과정에 하나의 방해적인 존재로서가 아닌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 작용하려면 반드시 부정적 진단 자료로서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

억압의 처리

바늘을 실을 꿰어 본 적이 있는지? 실을 쥐고 바늘구멍에 접근하여 그 보일락말락한 구멍 속에 실을 끼워 넣으려고 시도하기 전까지는 전혀 흔들림 없이 꽉 쥐고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일단 그 작은 구멍 속에다 집어넣으려고 시도하노라면 실은 요리조리 흔들리고 마침내 그 시도는 실패에 그치고 만다.

이러한 현상을 '목적 진전(目的震顫)' 이라고 부른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자 할 때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으려고 너무 신경을 쓰거나 지나치게 조심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뇌의 어느 한구석이 상처를 입었다든가 하는 병적인 조건 아래서는 이러한 '목적 진전' 현상은 대단히 현저하게 나타난다.

자동 제어장치의 부정적 진단은 말하자면 비판에 해당된다. 부정적인 진단은 바른 궤도로 돌아가기 위한 교정작업이 필요한 징후이다. 부정적인 진단은 모든 동작을 일시에 정지시키고자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전진하되 그 움직임을 약간 수정하여 궤도를 변경시키고자 하는 데에 있다.

부정적 진단이 제대로 역할을 발휘한다면 요격 미사일은 비판에 알맞게 반응하여 정확한 궤도로 돌아갈 수 있는 최적의 각도로 수정하여 표적을 향하여 전진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기계장치가 너무 지나치게 부정적 진단에 민감할 경우, 자동 제어장치는 필요 이상의 수정을 가하게 되어 표적을 향하여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갈짓자를 그리게 되어 옆으로만 왔다갔다 하는 형국이 되거나 아니면 그 모든 전진을 일시에 멈추어 버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인간이 지닌 메카니즘도 이와 똑같아서 부정적 진단에 너무 민감하다 보면 행동에 수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버리게 된다.

창조적 착상

스트레스란 우리가 자동적 창조 메카니즘을 무시해 버리고 모든 의식적 노력이나 전뇌의 활동으로 하려 들고, 모든 문제를 그것으로 해결하려 드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전뇌는 무엇을 창조하는 재간은 없다. 그것은 해야할 일을 해내는 재간도 없다. 문제를 제기하여 그것의 정체를 밝히는 것까지는 전뇌가 하는 일이다. 그러나 전뇌는 그 타고난 성격으로 인하여 결코 문제를 풀어나는 일은 없다.

창조적 착상은 전뇌의 사고 활동에 의해서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며 그것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불현듯 마치 번갯불과도 같이 나타난다. 자기가 고심하고 있는 문제를 의식속에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적 구상을 문제 대한 사전의 의식적인 사고 없이 우연히 오지는 않는다. 이 말은 영감이나 착상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원하는 답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의 관심을 온통 쏟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거기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생각하여야 하며 거기에 관한 정보란 정보는 힘닿는 데까지 끌어와야 한다.

나는 좀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할 때 어떤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인가를 발견해 냈다. 처음에는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그 주제를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무렵에 가서 나는 나 자신에게 그것에 대한 생각을 중단할 것을 단호하게 명령한다. 그러면 그 다음의 일은 내안의 지하조직에서 떠맏아서 처리하는 것이다. 몇 달 뒤에 다시 그 주제에 나의 의식이 미쳤을 때 나는 모든 일이 다 해결되어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버트란트 러셀)

창조적 메카니즘을 의식으로부터 풀어놓는 방법

1. 도박은 걸기전에 걱정하라, 룰레트의 원반이 돌아간 뒤에는 걱정은 헛일일 뿐이다.

걱정이란 일을 계획하는 과정과 그 일을 착수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지 일단 결정이 되고 다만 일을 진행시키기만 하면 되는 단계에서는 결과에 대해서 안달하거나 책임의식 따위를 느껴서는 안된다.

2. 현재 순간에 반응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라.

창조적 삶이란 환경에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적 메카니즘은 오로지 우리 자신이 현재 처한 환경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을 때 적절하게 반응하며, 또 거기에 따른 정보를 제공한다. 현재 처한 상황을 보다 뚜렷하게 의식하는 연습을 하라. '지금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를 생각하라. 신경과민을 일으키는 가장 커다란 요인은 지금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무의식적으로 시도하려는데 있다.

3. 한번에 하나씩 하라.

흔히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인하여 불안에 떨고, 걱정하고, 애를 태운다. 그러나 그러한 신경과민적인 반응은 그로 인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전부 한꺼번에 해치워야한 할텐테'라는 정신자세 때문인 것이다.

4. 도망가라.

만일 어떤 문제와 종일 씨름했는데도 아무런 승산이 없다면 우선 마음속에서 그것들을 깡그리 몰라내라, 그리고는 한숨 푹 잘 때까지 거기에 관한 건은 보류하라. 인간의 창조적 메카니즘은 깨어 있는 '나를 의식하는 '나'로부터 방해를 적게 받을수록 더 잘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람들은 곧잘 심신의 피로를 씻기 위해 조용한 시골집이나 해변가, 또는 숲이 우거진 산속의 집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지극해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마음먹기에 따라서 언제든지 자기 안에 물러가 침잠하여 마음대로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디에도 그보다 더 조용한 곳은 없으며, 모든 번뇌에서 그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곳 또한 없다. 그것은 물러가 자기 안에 침잠하는 것이다. 자기 안에 물러가 침잠하여 완벽한 마음의 평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생각을 찾아낼 수 있을 때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침착, 이러한 평정은 잘 잡혀진 마음의 질서일 뿐, 그 외 아무 것도 아님을 나는 확신한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이 마음의 밀실을 찾아 나서라. 그리하여 새로운 자기를 다시금 가다듬어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의식이 하는 일

여기까지 너무 무의식에 대해서만 강조를 했다. 하지만 무의식의 세계를 조절하는 손잡이는 바로 우리의 의식적 사고이다. 무의식의 세계가 부정적이고 부적합한 반응 양식을 개발하는 것은 바로 의식적 사고에 의해서 이다. 그런가 하면 또 이 자동적 반응 양식을 고칠 수 있는것도 의식의 합리적 사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올바른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무의식 속의 유아기적 암시를 극복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심지어 무의식의 내용까지도 바꿀 수가 있다. 만일 어떤 일을 하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하자. 그런데 이성의 소리는 그게 그렇게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큼 부도덕하거나 사악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고 하자, 그럴 때는 가차없이 왜 그런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따져보야야 한다. 그리고서 조목조목 그 이유를 들어서 그런 감정에 빠져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박히도록 해야 한다. 의식적인 신념을 생생하고 뚜렷한 것이 되게 해서 무의식에다 강한 인상을 남겨놓음으로써 유아시설에 간호원이나 어머니가 심어놓은 인상과 충분히 맞서서 대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합리적인 순간과 비합리적인 순간을 왔다갔다하며 만족해서는 안 된다. 비합리적인 것일 때는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럴때는 비합리적인 것은 용납할 수 없으며 결코 그런 것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결심을 가지고 해야 한다. 우유부단한 존재가 되어 반은 이성의 힘에 의해서, 반은 유아기적 우매함에 의해서 이리저리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버트란트 러셀)

대부분 사람들은 어린시절에 생성된 그릇된 개념들이 아직도 자신의 어딘가에 깊숙히 잠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합리적인 신념에 도달했으면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자기의 모든 사고방식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그 새로운 신념과 모순되는 개념에 대해서는 세밀한 검토를 해봐야 한다. 그러한 믿음이 실제 사실에 기인한 것인지, 하나의 가정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엉터리 결론에서 기인된 것인지 그것을 가려내라. 스스로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참다운 삶

삶을 삶답게 산다는 것은 곧 인생이 비교적 만족스러운 것임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는 현실적이고 적합한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자기를 찾아내야 하며, 건전한 자존을 지녀야 하며, 신뢰할 수 있는 자기, 믿을 수 있는 자기를 창조해야 한다. 수치스럽지 않은 자기, 숨기고 감추려 드는 자기가 아닌, 거리낌없이 창조적인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자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현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자신이 지닌 강점이 무엇이며, 약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두 가지 면에서 우리는 정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장 합당한 자기,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자기,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닌 자기, 이러한 자기를 토대로 한 자아 개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행복이란

사람들이 불행을 초래하는 보편적인 원인은 외상 거래적인 삶을 살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재를 살고 있지도 않으며 현재의 삶을 즐기기도 않는다. 언제나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이나 어떤 사건을 기다리며 산다. 그러나 거기에 실망이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행복이란 하나의 정신적 습관이며 정신적 자세이다.

그것은 현재 바로 지금에 익히고 연습하지 않으면 ?코 그것은 맛볼 수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항상 완전히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리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일상의 자질구레한 사건과 상황에 대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도 있고 즐거운 생각을 하면서 지낼 수도 있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습관을 익히는 것은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의학적 견지에서의 행복이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즐거운 생각을 하고 있는 마음의 상태 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 다만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속에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파스칼)

이 글은 성형외과 의사 멕스웰 말츠 박사의 'Cybernetics' 란 글을 요약한 것이다. 이 책은 전문 철학서도 심라학서도 아니다. 다만 그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느낌 생각들을 영혼에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담하게 적고 있다.

이 글은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기계론적인 해석을 가미한다. 그 기계론적인 해석은 본질이 아닌 기능적인 부분에 제한을 하면서 유심론적인 사상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어떤 글들은 그 글을 읽으면서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이 있다. 저자는 독자를 위하여 자신의 깊은 성찰을 절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출처: 다음카페 자운선가안티 (http://cafe.daum.net/jaunsungaanti)]

[출처] Psybernetics ( 사이버네틱스에 대하여 ) (비욘드 더 시크릿 Beyond the secret) |작성자 매력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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