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사업 실패사례] 엔론 (Enron, 1985-2001)
엔론은 닷컴 기업이 아닙니다만 몰락의 원인은 닷컴 기업들과 흡사합니다.
엔론은 1985년 휴스턴 내추럴 가스(Houston Natural Gas)와 인터노스(InterNorth) 사의 합병으로 탄생한 천연 가스 공급 회사였습니다. 이후 엔론은 석유, 전기, 펄프, 플라스틱, 금속, 금융, 고속 인터넷 등의 분야로 진출하면서 미국 최대 규모의 에너지 자원 및 원자재 판매 회사로 성장합니다.
엔론의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신들이 생산한 에너지 자원과 원자재를 판매하는 회사 자산 사업, 다른 하나는 제3의 기업들이 생산한 자원과 자재를 고객 기업에게 공급해주는 중개 사업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엔론은 중개 사업에 주력하기 시작했으며, 1999년엔 엔론온라인(EnronOnline)을 설립, 인터넷으로 중개 사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합니다.
엔론의 혁신, 그리고 빛나던 명성
엔론온라인은 수많은 에너지 생산/배송업체와 (인터넷과 엔론 소유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긴밀한 네트웍을 형성해, 고객 주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이 엔론 웹사이트에서 2달 간의 천연 가스를 주문하면, 엔론은 그 고객 기업에게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가스를 공급할 수 있는 생산, 배송업체를 찾아 연결시켜 주는 식이었죠.
엔론은 인터넷이 발달한 이후 모든 제품의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과거 에너지 자원의 가격이 공개되지 못했던 시기에 엔론은 가격에 대한 정보를 독점해 이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장 환경이 바뀐 뒤로, 엔론은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방적으로 전환해 가격이 공개된 환경에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웹에서 중개 사업을 시작한 엔론은 수요와 공급을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맞춰줄 수 있었습니다. 과거 1980년대에 장기간의 가스 공급 계약을 맺기 위해선 수많은 업체들과 접촉, 회의, 계약 수정 등의 과정을 거치며 9개월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힘을 이용한 뒤로, 엔론은 같은 규모의 초대형 계약을 단 수 초 만에 처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회사의 전체 거래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엔론의 온라인 거래는 급증했으며, 회사는 그 과정에서 막대한 중개 수수료를 받아 이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1998년 310억 달러였던 수익 규모가 2000년에는 1010억 달러를 기록한 엔론은 포춘 500대 기업 중 (매출액 기준) 7위를 차지합니다. 또한 같은 기간 포춘 선정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죠.
엔론은 자사의 웹사이트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을 ‘마켓 운영체계(Market Operating System: MOS)’라고 부르며 초고속 인터넷, 금융 사업 등 다양한 분야로 적용합니다. 이로써 엔론은 ‘인터넷 시대의 시장 개척자’라는 명성을 얻게 되죠.
이처럼 엔론은 전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B2B 전자 상거래 기업으로 명성을 얻으며 ‘e비즈니스의 모범 사례’로까지 기록됩니다.
빛나는 명성 뒤에 감춰진 엄청난 부정
그러나 이런 엔론의 화려한 모습은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엔론은 사실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부실 기업이었습니다.
엔론의 부실은 2001년 10월 3/4분기 수익 발표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이때 엔론은 초고속 인터넷, 수도 등의 사업에서 10억 달러를 손해 봤으며, 파트너 기업과의 계약 문제로 12억 달러의 자산이 축소됐다고 발표합니다. (이후 이 ‘파트너 기업’은 엔론의 회계 조작을 위한 조직체였음이 드러납니다.)
곧 이어 엔론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동안 수익을 거의 6억 달러씩 (이는 엔론의 전체 수익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음) 부풀려 보고했다고 자백합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서 엔론의 (90달러 선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순식간에 추락했고, 신용등급 역시 최하 단계로 떨어집니다.
부채 상환이 불가능해진 엔론은 2001년 12월 파산하고 맙니다. 이때 파산한 엔론의 자산 규모는 498 ^억 달러, 총부채 312억 달러였고,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파산으로 기록되죠.
엔론의 몰락은 회사 부실의 은폐, 조작에서 비롯됐습니다. 엔론은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을 청산하고 내실을 다지기 보다는, 오히려 부실을 감추고 주식 가치를 높이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인터넷 시장 환경에서 개방된 비즈니스 모델로 이름을 날렸던 엔론은 사실 그 어떤 기업보다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악화된 수익 구조를 감추기 위해 엔론은 회계 장부를 조작해 회사의 실적을 부풀리고 부채 관련 사항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나중엔 실적 조작을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 외부에 독립된 조직체들을 만들어 수익과 손실을 바꿔 치는 등 파행/편법 운영을 거듭했습니다. 실제로, 2000년 한해동안 엔론이 기록한 주당 순이익(earning per share: EPS) 중 28%는 외부 조직체에 자산을 팔아 올린 부당 수익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엔론온라인 설립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중개 사업 수익률 역시 이런 식으로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엔론의 자랑이었던 인터넷 중개 사업은 사실 큰 수익을 내고 있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중개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경쟁자들이 몰려들었고, 치열해진 경쟁 상황에서 마진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죠. 1998년 5.3%에 달했던 엔론의 중개 마진율은 일년도 안 되는 새에 1%대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떨어지는 수익률을 극복하기 위해 엔론은 초고속 인터넷, 금속,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했고, 이는 오히려 회사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 넣었죠.
e비즈니스에 대한 환상
엔론이 보여준 웹 비즈니스 사례는 분명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엔론은 이러한 혁신마저도 회사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이용했습니다. 인터넷 중개 사업에서 대성공을 거둔 것처럼 꾸민 엔론은 회사를 어떤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유능한 기업으로 포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대 포장 속에서 조직은 몰락했고, 엔론의 혁신은 아무런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엔론을 인수하려다 포기한 다이너지(Dynergy)의 사장, 처크 왓슨(Chuck Watson)은 엔론 사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습니다.
“엔론은 투자 등급이 BBB에 불과한, 자금 사정도 좋지 못한 기업이었다. 그런 기업이 전세계적인 온라인 중개상, 인터넷의 힘을 이용한 시장 개척자로 탈바꿈하며 e비즈니스의 선두 주자가 된다고 하자, 모든 시장이 거기에 넘어가고 말았다.”
저자: 이종운 | 날짜:2003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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